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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이순신연구의 본말(本末)

노승석의 이순신의 窓

여해고전연구소장 | 고전 및 초서전문가, 이순신연구가. 국내 최초 난중일기를 교감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

[이순신의 窓]이순신연구의 본말(本末)
  • 노승석
  • 승인 2020.07.3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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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노(官奴)와 여진(女眞)

  일찍이 조선의 선조(宣祖)는 이순신(李舜臣)의 학문과 덕업은 중국 한(漢)나라 때 장량(張良)이 황석공에게 전수받은 비서(祕書)에서 전수받은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이는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천하를 통일한 비법이 담긴 책으로, 유학(儒學)의 도덕론을 영향받아 오덕(五德)을 논했다. 특히 이것이 처세(處世)와 치국경세(治國經世)의 원리가 되므로 세인들은 이를 ‘천하경영의 방법’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순신의 정신과 학문은 수천년 역사 속에서 전해온 천하경영의 도덕론에 기반한 심오한 것이다. 특히 비서의 이론도 유학의 이념인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중시한 것인데, 이는 “자신을 놓아두고 남을 가르치는 것이 역행(逆行)이고, 자신을 바르게 하고 남을 감화시키는 것이 순행(順行)이다.”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러한 수기치인과 순역(順逆)의 해석은 어느 시대든지 인간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순신을 이해하는데 유학의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 이순신도 본래 유학을 충실히 배워 그의 사상과 언행이 모두 유학의 이론에 바탕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학의 경전부터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일상에 분주한 세인들은 어려운 유학을 공부할 겨를이 없고, 간혹 대의(大義)와 사상의 본질적인 연구보다는 지엽적인 자구(字句)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논란이 된 ‘관노(官奴)’과 ‘여진(女眞)’ 등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이순신연구에서 자구 해석의 지엽적인 문제이므로, 대의와 사상을 중시하는 정통 학자들이 다룰 내용은 아니다. 필자도 이를 논하는 것이 지엽적이고 오히려 이순신에게 누가될까 염려되어 가급적 논하기를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왜곡 내용으로 사회에 파장이 심각하게 되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중일기 정유년 4월 21일, “저녁에 여산 관노(남자종)의 집에서 유숙했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내용. 초고본 난중일기 소유자 최순선 ⓒ  -사진 불허 복제전재-
난중일기 정유년 4월 21일, “저녁에 여산 관노(남자종)의 집에서 유숙했다.[夕宿于礪山官奴家”는 내용. 초고본 난중일기 소유자 최순선 ⓒ -사진 불허 복제전재-

  굳이 해당내용을 정리하면, 관노(官奴)의 의미는 ‘관아의 남자종’으로 여자종은 ‘비(婢)’자를 써서 관비(官婢)라고 한다. 이는 한문용어의 기초적인 내용이다. 또한 여진은 여자종인데 그 뒤에 문맥에 맞지 않은 일본인의 오독자인 ‘스물입(卄)’, ‘서른삽(卅)’자를 필자가 병신년 7월 5일자 공(共)자 등의 용례를 근거로 ‘함께할 공(共)’자로 처음 교감(校勘)했다. 특히 여진(女眞)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기에 여기에 필자의 고증내용을 밝혀둔다.

<문헌고증 내용>

① 여진(女眞)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활동한 전라지역의 고문서에 실린 노비 목록에 나오는 실존한 여자종[婢]의 이름이다.
② 1935년 일본인이 오독한 스물입(卄), 서른삽(卅)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 글자이므로, 72건의 공(共)자 사례에 근거하여 반드시 공(共)자로 교감(校勘)해야 하는 글자다. 초서는 자형보다 문맥을 중시하고 말이 안되면 오독이라는 규칙에 의거한다.
③ 공(共)자는 이순신이 전쟁 중에 다수의 사람들을 만날 때 일상적인 ‘만남(見)’의 의미로 사용한 관용적인 표현이다.

이 내용은 필자가 10여 년 전부터 관련된 문헌들을 고증하여 정리한 것으로, 고전 및 초서, 문화재 연구계의 전문학자 10여 명의 의견도 반영하였다. 공(共)자의 해독내용은 논문으로 작성하여 학계와 학회(1급)에서 이미 검증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최근에도 전문학자 다수가 공감했다. 국내 고문서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한 학자는 “공(共)자가 변형된 서체로 작성되었지만, 이 외에는 달리 들어갈 글자가 없다”고 설명하였다.

  물론 이와 다른 견해도 있지만, 문헌적 근거가 미약하다. 아직 학계에는 위의 <문헌고증 내용>을 반증하는 논문이 보고된 바가 없다. 요컨대 오직 왜곡을 바로잡는 문제는 정확한 문헌내용을 기반으로 한 해당 분야(고전/초서)의 다수 학자들의 중론으로 해결될 수 있다. 《난중일기》에는 여성에 관하여 ‘간통할 간(奸)’자와 ‘사통할 사(私)’자로 기록된 사건이 적발되어 있다. 특히 공(共)자의 교감은 바로 교감학자 진원(陳垣)이 말한 교감의 원리[본교·타교·이교]를 병합 적용한 사례라 하겠다. 결국 이러한 지엽적인 오류 수정도 이순신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를 하는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되었다.

  주제어 : 왜곡, 문헌고증, 교감, 학자들의 중론, 본질적인 인물연구

 

   글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순신연구가, 초서/고전전문가)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2판, 《난중일기 유적편》(여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