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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窓]백의종군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

노승석의 이순신의 窓

여해고전연구소장 | 고전 및 초서전문가, 이순신연구가. 국내 최초 난중일기를 교감 완역했고, 2013년 유네스코 ...

[이순신의 窓]백의종군의 숭고한 정신을 훼손하지 말라
  • 노승석
  • 승인 2020.07.1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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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노(官奴)와 관비(官婢)의 의미

  병신년(1597) 겨울 일본은 조선을 재침하기 위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먼저 부하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이순신을 모함하는 흉계를 꾸몄다. 거짓으로 조선과 수호(修好)를 맺을 것을 청하면서 일본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곧 조선에 올 것이니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격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 내용을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에게 통보하였고, 조정은 절호의 기회로 알고 이순신에게 요시라의 계책대로 출동하기를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적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끝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2월 1일 선조는 이순신을 하옥시키라고 명하고, 원균으로 삼도수군통제사를 대신하게 하였다. 일본의 계책대로 된 것이다. 사헌부에서는 적을 놓쳤다는 이유로 이순신을 탄핵하고 선비 박성(朴惺)은 풍문을 듣고 상소하여 “이순신을 참수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침내 2월 26일, 이순신이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고 3월 4일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직에서 파직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후 정탁과 김명원, 이항복 등 조정 대신들의 구원(救援) 운동으로 4월 1일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났다. 이때 합천 초계에 있는 권율의 막하로 들어가 백의종군(白衣從軍)하여 공을 세우라는 명을 받았다. 3월 4일에 투옥되었다가 27일만에 나왔는데, 이순신은 석방된 날부터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는 8월 3일까지 120일 간의 백의종군의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아산의 선영에 가서 절을 올리고, 조상님과 장인 장모의 사당에 들러 배례를 올려 멀리 떠나감을 고유(告由)하였다.

 

  이때 여수에서 아산으로 올라오시던 이순신의 어머니가 태안 안흥량에서 사망했다.(향년 83세) 이날이 4월 11일인데, 이순신은 이틀 후 아산 해암(蟹巖, 게바위)에서 어머니의 시신을 영접한다. 이순신은 급히 달려가 가슴을 치고 뛰며 몹시 비통해했다. 영구를 상여에 싣고 아산 집으로 돌아와 빈소를 마련하고 초상(初喪)을 치르고 남행에 나섰다. 4월 5일부터 18일까지 아산에 머문 13일 동안은 이순신의 일생에 있어 가장 절망적이고 참담한 기간이었다.

  그후 4월 21일 저녁에 여산(礪山, 익산시 여산면)의 관노(官奴)의 집에서 잤다 상중출사(喪中出仕)하여 백의종군하러 합천으로 가는 중에 해가 저물어 여산 관아의 남자 종집[官奴家]에서 하룻밤 유숙한 것이다. 여기의 관노는 여자종을 뜻하는 관비(官婢)와는 분명히 다르고, ‘잘숙(宿)’자는 일상에서 하루 유숙한다는 일박(一泊 하루 숙박)의 의미이다. 이 내용에서는 “여인과 잠자리한다”는 의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여산(礪山) 동헌(익산시 소재), 노승석 사진 제공, 불허복제-
-여산(礪山) 동헌(익산시 소재), 노승석 사진 제공, 불허복제-

  이뿐 아니라, 병신년(1596) 9월 14일과 15일 자를 보면, 여진(女眞)이란 명칭이 나오는데, 그 뒤에는 암호와 같은 글자가 각각 적혀 있다. 이에 대해 1935년 일본인이 “여진입(女眞卄(스물 입))”과 “여진삽(女眞卅(서른 삽))”으로 각각 해독했는데, 뒤의 글자를 오독한 것이다. 이로인해 세간에는 불필요한 오해가 발생했다. 필자가 난중일기 9만 여 자(字)를 모두 판독하고 오류를 교감(校勘)하여 완역하는 과정에서 이 글자들을 모두 “함께할 공(共)”자로 바로 잡았다. 이는 “여진과 함께 했다”[女眞共]의 의미로 해석되는데, 이는 어떤 관계의 의미가 아니라 일상에서 단순히 만났다는 의미일 뿐이다. 특히 이 공(共)자는 병신년 7월 5일자의 역래공(亦來共)의 공(共)자와 같다. 이 용례를 해독의 증거로 제시하여 고증한 내용에 대해 최근까지 다수의 초서 및 고전전문가들이 공감했다.

  따라서 병신년의 여진공과 정유년의 관노의 집 내용에는 “관기와 함께 잤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러함에도 항간에 “이순신이 관노와 함께 잠자리를 했다”고 한 표현은 난중일기에 전혀 나오지 않는 사실무근한 잘못된 내용이다. 더욱이 관노의 노(奴)자는 남자종을 의미하는 글자인데 이를 여자종으로 곡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자가 “간색인 자주색이 정색인 붉은빛을 빼앗은 것을 증오한다.”고 했다. 간색이 정색을 가리듯이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혹세무민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주제어 : 여산 관노, 여진공, 백의종군

 

글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순신연구가, 초서/고전전문가)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2판(여해 2019)